⚓ 가곡 이야기 67 떠나가는 배 | 한국 테너의 영원한 숙제, 불멸의 아리아 '떠나가는 배'의 음악적 가치 | 한국인의 애창가곡 100선

가곡 '떠나가는 배'는 단순히 슬픈 노래가 아닙니다. 이 곡은 한국 가곡의 영역을 넘어 하나의 독립된 '드라마틱 아리아'로 평가받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작곡가 변훈은 양중해의 격정적인 시를 바탕으로, 한 남자의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을 치밀하고도 극적인 음악 언어로 완벽하게 구현해 냈습니다. 오늘은 이 곡이 왜 '한국 테너의 영원한 숙제'이자 불멸의 아리아로 불리는지, 그 음악적 가치와 끝나지 않은 유산을 조명해 봅니다.

사진-테너
테너의 영원한 숙제

🎼 하나의 완벽한 오페라, 노래 속의 드라마

이탈리아 오페라에 'Vesti la giubba(의상을 입어라)'나 'Nessun dorma(아무도 잠들지 말라)'가 있다면, 한국 가곡에는 '떠나가는 배'가 있습니다. 이 곡은 기승전결이 뚜렷한 드라마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성악가에게 극한의 표현력과 성악적 기량을 동시에 요구한다는 점에서 위대한 오페라 아리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 음악으로 그린 감정의 파노라마

변훈은 시의 감정선을 따라 음악의 밀도를 조절하며 한 편의 완벽한 음향 드라마를 창조했습니다.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는 듣는 이가 4분 남짓한 시간 동안 한 남자의 슬픔에 완전히 동화되게 만듭니다.

🎹 제2의 성악가, 피아노 반주

가곡 '떠나가는 배'에서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가 아닙니다. 그것은 화자의 내면 심리를 대변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입니다. 때로는 성난 파도처럼 포효하고(트레몰로 주법), 때로는 멀어지는 배의 고동소리를 묘사하며, 때로는 화자의 터질 듯한 심장박동이 됩니다. 성악가와 피아니스트가 완벽한 합을 이루지 못하면 이 곡은 생명력을 잃고 맙니다. 둘은 서로 경쟁하듯, 또 위로하듯 대화를 주고받으며 거대한 슬픔의 서사를 함께 완성해 나갑니다.

 

🏆 거장들의 목소리로 새겨진 전설

이 위대한 아리아는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성악가들을 통해 비로소 불멸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특히 **테너 박인수와 엄정행**의 이름은 '떠나가는 배'와 동의어처럼 여겨집니다.

 

🗣️ 박인수의 드라마, 엄정행의 서정

두 거장의 해석은 같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차이를 보이며, '떠나가는 배'가 가진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줍니다.

  • 테너 박인수: 그의 '떠나가는 배'는 '드라마' 그 자체로 평가받습니다. 압도적인 성량과 불꽃같은 표현력으로 노래의 비극성을 극대화합니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치 성난 바다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원초적인 슬픔과 분노를 남성적인 목소리로 폭발시키는 그의 연주는 전설로 남아있습니다.
  • 테너 엄정행: '미성의 테너'로 불리는 그는 드라마틱함 속에 서정성을 녹여냅니다. 폭발적인 절규 속에서도 아름다운 선율을 잃지 않는 그의 연주는, 슬픔의 이면에 있는 연인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을 느끼게 합니다. 그의 노래는 거친 파도보다는, 깊고 수심 어린 바다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들 외에도 수많은 후배 성악가들이 자신만의 '떠나가는 배'를 선보이며, 이 곡의 위대한 계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곡을 부른다는 것은 선배 거장들의 그림자에 도전하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증명하는 통과의례와도 같습니다.

⭐ 나의 마음을 울린 절규

이 노래가 가진 힘은 단지 무대 위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것을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시간이든, 혹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절이든. '떠나가는 배'는 바로 그 상실의 순간에 우리 마음속에서 울리는 배경음악과도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큰 좌절을 겪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시절, 우연히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터져 나오라 애슬픔"이라는 구절을 듣는 순간, 억지로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노래 속 화자의 절규가 마치 나의 울음소리 같았습니다. 실컷 울고 난 뒤, 이상하게도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슬픔의 맨 밑바닥까지 함께 가주고, 대신 소리 질러주는 듯한 노래. 가곡 '떠나가는 배'는 그렇게 가장 어두운 순간에 가장 큰 위로를 주는, 역설적인 힘을 가진 명곡입니다.

 

결국 '떠나가는 배'는 한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비극을 담은 노래를 넘어, 인간이 가진 '상실'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가장 극적인 음악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문화유산입니다. 이 노래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성악가들의 목소리로 불리고,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한, 변훈과 양중해 두 예술가가 남긴 슬프고도 위대한 항해는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