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악은 첫 소절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붙잡아 아련한 어딘가로 데려갑니다.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한국인의 가슴속에 '그리움'이라는 감정의 원형으로 자리 잡은 노래. 바로 채동선 작곡, 이은상 작시의 가곡 '그리워'입니다.
이 노래는 단순히 대상을 잃어버린 슬픔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처연한 풍경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보이지 않는 상대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그리움의 감정을 한 차원 높게 승화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한국가곡의 보석 같은 명작, '그리워'를 처음 만나는 분들을 위해 이 곡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시의 세계와, 그 안에 담긴 슬픔, 결심, 그리고 영원한 사랑의 서사를 함께 여행해 보고자 합니다.
슬픔에서 약속으로: 이은상 '그리워' 가사 심층 분석
'그리워'는 한 편의 짧은 드라마처럼, 화자의 감정이 점진적으로 변화하고 성숙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내님은 아니 뵈네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붙일 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세월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에는 그대 있어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서 진종일 언덕길을 헤매다 가네
시어에 담긴 감정의 여정
- 1부 (1-3행): 상실과 방황
화자는 그리운 임을 찾아왔지만, 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애처로운 들국화'와 '바람에 날리는 갈꽃' 뿐. 이 쓸쓸한 가을 풍경은, 임을 잃고 의지할 곳 없이 방황하는 화자의 마음(心)과 완벽하게 동일시됩니다. - 2부 (4-5행): 체념과 새로운 다짐
화자는 감정의 전환을 맞이합니다. 과거의 좋았던 시간, 슬펐던 시간을 더 이상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라고 결심합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physical 한 만남을 넘어선, 마음속의 영적인 교감을 선택합니다.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에는 그대 있어"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으로, 육체적 이별을 초월한 영원한 사랑의 약속입니다. - 3부 (6행): 성숙한 그리움의 실천
마지막 행에서 화자는 다시 '그리워 그리워'하며 언덕길을 헤맵니다. 하지만 이 헤맴은 1부의 절망적인 방황과는 다릅니다. 마음속에 서로를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가진 채, 임과의 추억을 되새기고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의식(ritual)'과도 같은 성숙한 그리움의 표현입니다.
결국 이 시는 이별의 슬픔을 받아들이고, 더 높은 차원의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한 인간의 내적 성장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감정의 파노라마를 그리는 음악
작곡가 채동선은 이은상 시의 복합적인 감정 변화를 드라마틱한 음악으로 완벽하게 그려냈습니다.
곡의 초반부는 느리고 애상적인 선율로 화자의 상실감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눈물도 웃음도' 부분부터는 음악이 조금 더 단단해지며 화자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에 이르러서는, 슬픔을 넘어선 평온함과 확신에 찬 어조로 노래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처음의 멜로디로 돌아오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슬픔이 아닌, 모든 것을 받아들인 자의 깊은 여운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음악은 시의 감정선을 충실히 따라가며, 듣는 이가 화자의 내적 여정에 온전히 동참하게 만듭니다.
당신의 마음속 언덕길
가곡 '그리워'는 단순히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노래를 넘어, 상실의 아픔을 겪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위로와 나아갈 길을 제시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속에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사랑의 메시지는,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노래를 들으며, 우리 역시 마음속 그리운 이를 떠올리며 각자의 '언덕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채동선과 이은상의 명작은 그 길이 외롭지만은 않다고 따뜻하게 말해줍니다.
자주 묻는 질문 (FAQ)
Q1: 가곡 '그리워'는 언제 만들어졌나요?
A1: 193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한 발표 연도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으나,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에 탄생한 한국의 대표적인 예술가곡입니다.
Q2: 가사에 나오는 '들국화'와 '갈꽃'은 무엇을 상징하나요?
A2: 가을의 쓸쓸하고 처연한 분위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소재입니다. 화자의 텅 빈 마음과 황량한 내면 풍경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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