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이야기 73🏛️ | 석굴암, 돌에 새긴 불국(佛國)과 천년의 역사 - 한국인의 애창가곡 100선

반응형

노래 가곡 석굴암이 그토록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그 대상이 되는 '석굴암' 자체가 인류가 빚어낸 가장 위대한 예술품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이수인 작곡, 최재호 작시의 노래가 석굴암의 서정을 담았다면, 실제 석굴암은 신라인의 염원과 천재적인 예술혼이 응축된 역사의 결정체입니다.

 


🏗️ 재상 김대성, 현생과 전생의 부모를 위해 나라를 세우다

석굴암의 탄생은 신라의 재상이었던 김대성(700-774)의 지극한 효심에서 시작됩니다. 『삼국유사』는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불사(석굴암의 원래 이름)를 창건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발원을 넘어, 부처의 나라, 즉 불국(佛國)을 이 땅에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원대한 꿈이 담긴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습니다.

 

🕰️ 24년의 대역사, 통일신라 예술의 총집합

석굴암 공사는 경덕왕 10년(751년)에 시작되어 김대성이 세상을 떠난 후인 혜공왕 10년(774년)에 국가에 의해 완공되었습니다. 무려 24년에 걸친 대역사였습니다. 이 시기는 통일신라의 문화가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때로, 석굴암에는 당시 최고의 건축, 조각, 기하학, 물리학 지식이 총동원되었습니다. 화강암을 마치 찰흙처럼 자유자재로 다루어 인공적으로 쌓아 올린 돔 구조는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창적인 건축 기법입니다. 이는 단순한 동굴 사원이 아니라, 완벽한 비례와 수학적 계산을 바탕으로 설계된 '돌의 건축물'입니다.

 

🌏 왜 토함산 동쪽을 바라보았나?

석굴암의 본존불이 동해를 바라보도록 배치된 것 역시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동해는 신라에게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은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으며, 그의 아들 신문왕은 동해 바닷가에서 만파식적이라는 신비한 피리를 얻었습니다.

 

본존불의 시선이 동해를 향하는 것은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호국(護國)의 염원과, 떠오르는 태양처럼 부처의 광명이 온 누리에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가곡 석굴암의 첫 소절, "토함산 잦은 고개 돌아보면 쪽빛 동해"는 바로 이 역사적, 종교적 의미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구절인 것입니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그 절대적 가치

1995년, 석굴암은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는 석굴암이 한국을 넘어 인류 전체가 함께 보존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지닌 걸작임을 세계가 인정한 사건입니다. 유네스코는 석굴암을 '의심할 여지 없는 인류의 걸작'으로 평가하며 그 가치를 높이 샀습니다.

 

✨ 완벽한 조화와 종교적 상징성

석굴암의 공간은 전실(앞방)과 주실(안방)로 나뉘며, 이는 각각 인간의 세계와 부처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좁고 네모난 전실을 지나 둥근 주실로 들어서는 과정은, 번뇌의 사바세계를 지나 완벽한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종교적 여정을 건축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주실의 돔형 천장은 하늘을, 평평한 바닥은 땅을 상징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 중심에 자리한 본존불과 그를 둘러싼 보살, 나한, 사천왕 등 총 39구의 조각상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장엄한 만다라(MANDALA), 즉 불교의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 수난의 역사와 보존의 노력

천년의 세월을 견뎌온 석굴암이지만, 뼈아픈 수난의 역사도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잊혀졌다가 20세기 초에 발견된 후, 일제강점기에 잘못된 보수 공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습도 조절을 위해 설치했던 시멘트 공사로 인해 내부에 습기가 차고 이끼가 끼는 등 심각한 훼손을 겪었습니다.

 

광복 이후, 이를 바로잡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이어졌고, 지금은 항온항습 시설과 유리벽을 설치하여 더 이상의 훼손을 막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리벽 너머로만 본존불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위대한 유산을 후대에 온전히 물려주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가곡 석굴암의 가사 "차가운 이끼 속에 푸른 숨결 들려오고"는 어쩌면 이 훼손의 역사마저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구절이라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 노래와 돌, 천년을 이어온 대화

가곡 석굴암은 단순한 노래가 아닙니다. 그것은 돌에 새겨진 신라인의 꿈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이어주는 영적인 다리입니다. 최재호 시인은 석굴암이라는 위대한 건축물이 품은 역사와 철학을 시적 언어로 풀어냈고, 이수인 작곡가는 그 언어에 영원히 살아 숨 쉴 선율을 부여했습니다.

 

🌟 예술이 예술을 낳다

신라인들이 남긴 위대한 조각 예술이 천년의 세월을 건너와 20세기의 시인과 작곡가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 영감은 다시 '가곡'이라는 새로운 예술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는 또다시 우리의 마음을 울리며 석굴암을 새롭게 보게 만듭니다. 이처럼 위대한 예술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서로를 낳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생명력을 이어갑니다. 가곡 석굴암을 듣는 것은, 바로 이 장대한 예술의 대화에 참여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우리는 이 노래를 통해 돌 속에 잠든 천년의 숨결을 느끼고, 연좌 위 부처님의 온화한 미소에서 깊은 위안을 얻습니다. 가곡 석굴암, 그것은 돌과 소리가 만나 빚어낸 기적과도 같은 울림입니다.

 

사진-석굴암
웃음마저 좋으셔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