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근의 가곡 ‘눈’은 단순히 아름다운 겨울 노래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고뇌했던 한 청년의 순수한 영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노래는 1981년 겨울, 관악산에 내린 눈을 배경으로 한 스무 살 청춘의 독백입니다.
음악을 꿈꿨던 경제학도
어릴 적부터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김효근은 당연히 음대 진학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장남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는 다른 곳을 향했고, 그는 결국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꿈을 향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공 서적과 오선지를 함께 펼쳐 들었고, 강의실을 오가며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멜로디를 그렸습니다. 부모님의 반대, 전공이라는 현실의 무게 속에서 그에게 음악은 유일한 탈출구이자 가장 순수한 열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눈’의 서정적인 멜로디 뒤에는 이처럼 한 청년의 애틋하고 치열했던 시간이 숨어 있습니다.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1981년의 겨울, 훗날 ‘눈’의 무대가 된 관악산 캠퍼스. 김효근은 창밖의 설경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깁니다.
“조그만 산길에 흰 눈이 곱게 쌓이면 / 내 작은 발자국을 영원히 남기고 싶소.” 이 첫 소절은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은 청춘의 열망을 담고 있습니다.
‘조그만 산길’은 어쩌면 그가 걷고 있는 불확실한 미래, ‘작은 발자국’은 음악의 길에 남기고픈 그의 흔적이었을지 모릅니다.
순수하게 빛나는 눈처럼, 자신의 마음 역시 하얗게 물들 때까지 그 길을 헤매이고 싶다는 고백은 그래서 더 아프고 아름답게 들립니다.
눈 내리는 날, 나에게도 떠오르는 얼굴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홀로 도서관에 갇혀 지내던 겨울이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그 아름다운 풍경이 오히려 서럽게 느껴졌습니다.
막막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이 눈처럼 쌓여가던 그때, 우연히 이 노래 ‘눈’을 들었습니다.
‘외로운 겨울새 소리 멀리서 들려오면 / 내 공상에 파문이 일어 갈 길을 잊어버리오.’ 라는 가사가 마치 제 마음을 그대로 읽어낸 것만 같았습니다. 그 순간, 눈은 더 이상 차가운 결정체가 아니라, 저를 위로하고 제 안의 순수했던 꿈을 일깨우는 따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순결한 님의 목소리, 흰 눈 되어 온다오
노래의 2절은 ‘순결한 님의 목소리’를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님’은 사랑하는 연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가 그토록 갈망했던 ‘음악’ 그 자체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의 길 위에서 잠시 잊고 있던 순수한 꿈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와 마침내 ‘흰 눈’이 되어 자신에게 내린다는 가사는,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방황하던 청년이 마침내 음악과 하나가 되는 숭고한 순간을 그리고 있습니다.
관악산의 눈은 결국 김효근에게 꿈의 다른 이름이었던 셈입니다.
한 청년이 관악산 눈밭 위에 새겼던 순수한 고백은 시대를 넘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적시는 따뜻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가곡 ‘눈’은 가장 순수했기에 가장 위대한 힘을 지닌 노래로 우리 곁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가곡 이야기 29 눈, 이 노래 경제학도가 썼다고? / 한국인의 애창가곡 100선
김효근 작곡의 ‘눈’은 순수한 서정성으로 겨울의 문턱마다 우리를 찾아오는 명가곡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낸 주인공이 음대생이 아닌, 쟁쟁한 전공자들을 모두 제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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