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이야기 33 산유화, 비운의 천재 북으로 가버린 작곡가 김순남 / 한국인의 애창가곡 100선

 

가곡산유화 깊은 울림은 김소월의 시가 가진 철학적 깊이와, 이념의 격랑 속에서 스러져간 비운의 천재 작곡가 김순남의 삶이 더해져 완성됩니다. 노래는 홀로 피고 지는 들꽃의 운명에 예술가의 고독한 삶을 투영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걸작입니다.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 음악가

 

작곡가 김순남(1917~1983) 식민지 조선이 낳은 최고의 음악 천재 명이었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고, 해방 후에는 서양의 현대음악과 우리의 민족 정서를 결합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했습니다.

 

하지만 해방 공간은 예술가가 순수하게 창작에만 몰두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그는 좌익 문예총동맹 산하 음악동맹의 위원장으로 활동했고, 결국 1948 남북연석회의에 참여했다가 그대로 북에 남게 됩니다.

 

북에서의 역시 순탄치 않아 숙청과 복권을 반복하다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삶은 이념이 개인의 예술과 인생을 어떻게 파괴할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 증거입니다.

 

산유화, 고독한 존재의 노래

 

김소월의 산유화 단순히 산에 꽃을 묘사한 시가 아닙니다. “산에 / 피는 꽃은 /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라는 구절은 시의 핵심입니다.

 

산에 꽃은 누가 보아주든 말든,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그저혼자서피어납니다. ‘ 여름 없이피고 지는 것은 자연의 거대한 순환일 , 안에서 꽃은 어떠한 목적이나 의미도 없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역시 마찬가지라는 깊은 철학적 성찰로 이어집니다. 우리 모두는 광활한 우주 속에 던져진, 저만치 혼자 피어있는 고독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시와 작곡가, 비극적 운명의 만남

 

김순남은 바로 시의존재론적 고독 정확히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예술가로서 느꼈을 깊은 고독과 소외감을산유화 투영했을 것입니다.

 

시대를 잘못 만나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립되어 갔던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을지도 모릅니다.

 

홀로 피었다가 소리 없이 지는 들꽃의 모습은, 남에서도 북에서도 온전히 환영받지 못하고 스러져간 작곡가 자신의 모습과 슬프도록 닮아 있습니다.

 

나만의 산유화를 피워내던 시절

 

대학 시절, 모두가 성공을 위해 정해진 길을 향해 달려갈 , 저는 비주류로 취급받던 분야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공부를 혼자 파고들던 시간은 외롭고 막막했습니다.

 

마치 깊은 산속,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홀로 피어난 들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때 가곡산유화 제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그저 묵묵히 너의 꽃을 피워내면 된다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그렇게산유화 저의 고독한 시간을 지탱해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비운의 천재 작곡가 김순남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산유화 가장 외로운 존재들을 위한 가장 따뜻한 위로의 노래가 되어 우리 곁에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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