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벌 동쪽 끝으로..." 이 첫 구절, 그냥 소리 내 읽었을 뿐인데 왜 머릿속에 풍경이 막 그려지는 걸까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언어의 마술사' 정지용의 시 '향수' 이야기입니다.
눈 감으면 그려지는 한 폭의 수채화 같지만, 알고 보면 짠내 폭발하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는 사실! 노래가 되기 전, 시 그 자체의 매력 속으로 흠뻑 빠져볼까요?
"넓은 벌 동쪽 끝으로..." 그냥 읽었는데 왜 풍경이 보이죠?
신기한 경험, 다들 해보셨을 거예요. 정지용의 '향수'는 글자를 읽고 있는데 마치 VR 체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앞에 풍경이 쫙 펼쳐집니다.
옛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한 실개천, 한가롭게 꼬리를 흔드는 얼룩백이 황소,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소까지. 이건 그냥 시가 아니라 한 폭의 잘 그린 풍경화, 아니, 생생한 영상에 가깝습니다.
시인은 어떻게 이런 마법을 부렸을까요? 그는 '지줄대는', '금빛 게으른', '함부로 쏜' 같은 독특한 표현들로 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100년 전 시인의 고향을 마치 어릴 적 내 고향처럼 느끼게 되는 거죠.
천재 시인의 '인생짤' 같은 완벽한 언어
'향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국 현대시 중 가장 완벽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힙니다. 요즘 말로 하면 시인의 '인생짤' 같은 작품이랄까요? 단어 하나, 쉼표 하나도 그냥 쓰인 게 없습니다.
'휘돌아 나가고', '우지짖고', '돋아 고이시는' 같은 단어들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악기처럼 각자의 소리를 내며 완벽한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많은 작곡가들이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노래라 멜로디를 붙일 수 없다"고 했을 정도죠. 아름다운 이미지와 음악 같은 리듬감, 이 두 가지만으로도 '향수'는 우리를 홀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알고 보면 짠내 폭발,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노래
그런데 말입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하는 시의 분위기가 왜 이렇게 아련하고 슬플까요? 비밀은 바로 후렴구,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에 있습니다.
이거, "절대 잊을 수 없어!"라는 긍정적인 다짐이 아니에요. 오히려 '너무나 그립지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꿈에서조차 잊을 수가 없다'는 처절한 슬픔의 외침에 가깝습니다.
시 속 아버지는 늙고 지쳐 있고, 어머니는 추운 새벽에 고생하시죠. 아름다운 풍경과 대비되는 가족의 고단한 모습은 이 '고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실된 낙원'임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더 슬프고 아름다운 거죠.
그래서 우리 모두의 '마음속 고향'이 되었나 봐
결국 정지용의 '향수'는 단순히 충북 옥천이라는 특정 장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 평화, 그리고 돌아가고 싶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기에 우리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죠.
진짜 고향이 없거나, 있어도 너무 변해버린 우리 현대인들에게 '향수'는 언제든 눈을 감고 돌아갈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 되어줍니다. 그곳에선 여전히 실개천이 흐르고, 파아란 하늘이 펼쳐져 있을 테니까요.
가장 완벽한 언어로 빚어낸 가장 슬픈 그리움의 노래, '향수'. 시대를 넘어 우리 모두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고향'의 풍경은 노래가 되기 전부터 이렇게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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