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이야기 22 그리운 금강산, 그냥 '산 노래'가 아니라고? / 한국인의 애창가곡 100선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 ..." 장엄한 전주와 함께 시작되는 '그리운 금강산'. 노래가 처음에는 그저 아름다운 하나를 노래하기 위해 기획되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시인의 친구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어떻게 국민의 가슴을 울리는 '분단의 노래' 되었는지, 위대한 탄생의 순간으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방송사의 특명! "일주일에 노래 곡씩 만드시오"

 

때는 1961, 당시 KBS 라디오는 '이주일의 노래'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합니다. 매주 새로운 창작 가곡을 발표해서 국민들에게 좋은 노래를 보급하자는 취지였죠.

 

방송사는 당대 최고의 작사가였던 한상억 시인에게 "우리나라의 명산을 주제로 가사를 써달라"라고 의뢰합니다.

 

처음 의뢰를 받은 한상억 시인의 머릿속에는 한라산, 설악산, 지리산 같은 남한의 명산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쩌면 '그리운 금강산' '아름다운 설악산'이나 '장엄한 지리산' 수도 있었던 거죠.

 

" 친구 고향인데..." 운명을 바꾼 한마디

 

남한의 여러 산을 떠올리며 고심하던 한상억 시인의 머릿속에 문득 친구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바로 6.25 전쟁 월남한 화가 친구였죠.

 

친구는 술만 마시면 "금강산 한번 가봤으면 원이 없겠다", " 고향 금강산만큼 아름다운 곳은 없다"라며 눈시울을 붉히곤 했습니다.

 

친구의 애절한 그리움을 떠올린 순간, 한상억 시인의 마음은 확고해졌습니다. '그래, 지금은 없는 북녘의 금강산을 노래하자. 이건 친구의 노래이자, 고향을 잃어버린 모든 이들의 노래다!' 단순한 자연 찬미가 아닌, '그리움' '분단'이라는 시대의 아픔이 담긴 위대한 노래는 이렇게 방향을 잡게 됩니다.

 

오선지 위에서 피어난 금강산의 사계(四季)

 

친구의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 내려간 가사는 작곡가 최영섭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가사를 읽은 최영섭 작곡가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금강산의 아름다운 봉우리들과 그곳에 가지 못하는 애타는 마음을 음악으로 그려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금강산의 웅장함과 사계절의 다채로운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편의 교향시처럼 장엄하고 드라마틱한 멜로디를 구성했습니다.

 

특히 "비로봉 봉우리 짓밟힌 자리" 같은 구절에서는 비통함을, "그리운 이천 "에서는 광활한 스케일을 음악으로 완벽하게 표현해 냈습니다.시인의 마음이 작곡가의 영감을 만나 비로소 날개를 것이죠.

 

전파를 순간, 국민의 노래가 되다

 

이렇게 완성된 '그리운 금강산' 1961 9, 소프라노 박영희의 목소리로 처음 KBS 라디오 전파를 탔습니다. 노래가 흘러나오자 방송국의 전화는 그야말로 불이 났다고 합니다.

 

"지금 나온 노래 제목이 무엇이냐", "악보를 구할 없느냐" 문의가 빗발쳤죠. 특히 고향을 북에 두고 실향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그리운 금강산' 발표와 동시에 개인의 노래를 넘어,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우리 모두의 노래, '국민 가곡' 운명을 안고 태어난 것입니다.

 

 

친구를 위로하려던 마음이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노래가 되기까지, '그리운 금강산' 시작은 이처럼 따뜻하고도 애틋했습니다. 노래가 품은 진정한 힘은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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