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가 엄격했던 시절, 세상을 놀라게 한 두 개의 전설적인 듀엣이 탄생합니다. 바로 존 덴버와 플라시도 도밍고의 'Perhaps Love', 그리고 이동원과 박인수의 '향수'입니다.
포크 가수와 오페라 가수의 만남이라는 파격적인 공통점을 가진 두 곡! 동서양을 대표하는 세기의 듀엣은 과연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달랐을까요?
포크와 클래식의 만남, 전설의 시작
1981년, 미국의 팝-포크 가수 존 덴버는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Perhaps Love'를 발표하며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립니다. 컨트리풍의 맑은 목소리와 웅장한 오페라 가수의 목소리가 하나의 노래 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그 자체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8년 뒤인 1989년 한국, 비슷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포크 가수 이동원의 서정적인 목소리와 서울대 음대 교수였던 테너 박인수의 폭발적인 목소리가 만난 '향수'가 발표된 것이죠.
두 곡 모두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크로스오버'라는 장르를 개척하며,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명곡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목소리의 '케미': 대화와 하모니 vs. 서사와 폭발
두 곡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두 가수의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케미'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은 확연히 다릅니다. 'Perhaps Love'는 마치 '대화와 하모니' 같습니다.
존 덴버가 "사랑이란 아마 이런 걸까?" 하고 부드럽게 질문을 던지면, 도밍고가 "그래, 사랑은 그런 것이라네" 하고 따뜻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듯하죠. 서로의 파트를 주고받으며 아름다운 화음을 쌓아가는 두 사람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반면, '향수'는 **'서사와 폭발'**의 구조를 띱니다. 이동원이 담담한 목소리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하며 한 폭의 그림 같은 고향의 풍경(서사)을 차분히 그려나갑니다.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그리움을 쌓아가다가, 후렴구에서 그 모든 감정의 바통을 박인수에게 넘기죠. 그러면 박인수는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라며 억눌려왔던 모든 감정을 하늘 끝까지 터뜨려 버립니다(폭발).
이처럼 '향수'는 두 목소리가 각자의 역할을 완벽히 분담하여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를 완성합니다.
노래의 심장: '사랑'에 대한 사색 vs. '고향'을 향한 절창
두 노래가 품고 있는 감성의 결 또한 다릅니다. 'Perhaps Love'의 심장은 '사랑에 대한 따뜻한 사색'입니다. 사랑은 폭풍 속의 안식처 같기도 하고, 기억의 창문 같기도 하다고 노래하며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긍정적이고 따뜻하게 그려냅니다.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랑이라는 감정의 위대함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죠.
하지만 '향수'의 심장은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향한 애절한 절창(絶唱)'에 가깝습니다.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을 노래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늙고 지친 아버지와 고단한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식민지 시대의 암울함이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잊힐 리야"라는 외침은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 돌아갈 수 없기에 더욱 사무치는 슬픔과 한(恨)의 정서를 담고 있죠.
'Perhaps Love'가 따뜻한 위로라면, '향수'는 가슴을 저미는 아름다운 비가(悲歌)에 가깝습니다.
노래의 뿌리: 팝 발라드와 현대시의 만남
이러한 차이는 두 노래의 뿌리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Perhaps Love'는 존 덴버가 처음부터 듀엣을 염두에 두고 쓴 아름다운 팝 발라드입니다. 노래를 위해 태어난, 잘 만들어진 작품이죠.
반면 '향수'는 '언어의 마술사' 정지용 시인이 쓴, 그 자체로 완벽했던 한 편의 현대시에서 출발했습니다. 너무나 완벽해서 누구도 노래로 만들 엄두를 내지 못했던 시에 작곡가 김희갑이 도전적으로 멜로디를 입힌 것입니다.
문학 작품이 가진 깊이와 무게감이 노래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향수'는 더욱 독특한 아우라를 가지게 됩니다.
'Perhaps Love'가 잘 짜인 각본과 최고의 배우들이 만나 탄생한 세련된 할리우드 영화라면, '향수'는 위대한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감독의 엄청난 도전정신이 더해져 완성된 예술 영화 같다고 할까요?
방식은 달랐지만, 두 곡 모두 장르의 벽을 허문 위대한 도전이었으며, 음악이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을 우리에게 선물했다는 점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가곡 이야기(19) 향수: 성악과 교수님과 포크 가수의 듀엣, 이거 맞아? / 한국인의 애창가곡 100선
도저히 부를 수 없을 것 같던 노래 '향수'. 모두가 포기하려던 순간, 작곡가 김희갑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친 아이디어 하나가 한국 가요계의 역사를 바꿔놓았습니다. "같이 부르면 되잖아!" 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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