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의 긴 침묵을 깨고 1988년 마침내 세상에 다시 나타난 가곡 ‘산유화’는 우리 음악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단순한 ‘금지곡의 해금’을 넘어, 시와 음악이 얼마나 완벽하게 하나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압도적인 걸작의 ‘재발견’이었기 때문입니다. 1988년, 마침내 봉인이 풀리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대한민국 사회에는 민주화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이 흐름 속에서 그동안 이념의 잣대로 억압받았던 문화 예술 분야의 빗장도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정부는 월북 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한 해금 조치를 단행했고, 작곡가 김순남의 이름과 그의 음악도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산유화’의 악보가 다시 세상에 공개되고, 성악가들의 목소리로 불렸을 때, 음악계는 경탄을 금치..
가곡 ‘산유화’의 깊은 울림은 김소월의 시가 가진 철학적 깊이와, 이념의 격랑 속에서 스러져간 비운의 천재 작곡가 김순남의 삶이 더해져 완성됩니다. 이 노래는 홀로 피고 지는 들꽃의 운명에 한 예술가의 고독한 삶을 투영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걸작입니다.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 음악가 작곡가 김순남(1917~1983)은 식민지 조선이 낳은 최고의 음악 천재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는 일본 유학 시절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고, 해방 후에는 서양의 현대음악과 우리의 민족 정서를 결합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했습니다. 하지만 해방 공간은 예술가가 순수하게 창작에만 몰두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 속에서 그는 좌익 문예총동맹 산하 음악동맹의 위원장으로 활동했고, 결국 1948년..
김순남 작곡의 '산유화'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김소월의 시에 선율을 붙인, 우리 가곡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곡입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노래가 한때 ‘부르면 안 되는 노래’, 즉 금지곡으로 40년 가까이 꽁꽁 봉인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한여름에 만나는 고독한 '산유화' 2025년 7월, 짙은 녹음과 뜨거운 태양이 세상을 지배하는 계절입니다. 이런 계절에 ‘갈 봄 여름 없이’ 홀로 피고 지는 고독한 들꽃을 노래하는 것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곡 ‘산유화’는 계절을 초월하는 존재의 본질을 이야기합니다. 이 노래가 품고 있는 서늘한 고독감은 오히려 한여름의 열기를 식히고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묘한 힘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에는 ..
가곡, 팝 발라드처럼 다가오다한국가곡(韓國歌曲)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격식 있는 음악회,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 시어와 멜로디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 마치 한 편의 잘 만든 팝 발라드처럼 우리의 마음에 훅 들어와 각인되는 가곡들이 있습니다. 바로 작곡가 김효근의 '첫사랑', 그리고 '내 영혼 바람되어'와 같은 곡들입니다. 이 곡들은 클래식의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놀라울 만큼 현대적이고 대중적인 감수성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예술가곡의 틀 안에서 팝의 매력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흐름을 '아트팝 가곡(Art Pop Gagok)'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조명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한국 창작 가곡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곡가 김효근의 음악 세..
김효근의 ‘눈’은 그가 훗날 ‘아트팝(Art-Pop)’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게 되는 출발점이 된 곡입니다. 스무 살 청년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뛰어난 음악적 완성도와 서정적인 선율은,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김효근 음악 세계의 서막을 화려하게 열었습니다. 피아노가 그리는 한 폭의 설경(雪景) ‘눈’의 감동은 노래가 시작되기 전, 피아노 전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른손의 아르페지오(펼침화음)는 마치 하늘에서 흩날리며 떨어지는 눈송이를, 왼손의 부드러운 화음은 소복하게 쌓여가는 눈의 무게감을 그려냅니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눈앞에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겨울 풍경이 저절로 펼쳐집니다. 김효근은 피아노 반주를 단순히 노래의 배경으로 사용하지 않고, 시의 이미지를 소리로 형상화하는..
김효근의 가곡 ‘눈’은 단순히 아름다운 겨울 노래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음악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현실의 벽 사이에서 고뇌했던 한 청년의 순수한 영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노래는 1981년 겨울, 관악산에 내린 눈을 배경으로 한 스무 살 청춘의 독백입니다. 음악을 꿈꿨던 경제학도 어릴 적부터 음악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김효근은 당연히 음대 진학을 꿈꿨습니다. 하지만 장남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는 다른 곳을 향했고, 그는 결국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꿈을 향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공 서적과 오선지를 함께 펼쳐 들었고, 강의실을 오가며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멜로디를 그렸습니다. 부모님의 반대, 전공이라는 현실의 무게 속에서 그에게 음악은 유일한 탈출구이자 가..